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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팁

야마나시 가쓰누마 완전 가이드 2026: 일본 와인의 발상지, 포도 언덕 지하 와인 카브부터 호토까지

에디터 시우
2026.05.22
3
야마나시 가쓰누마 완전 가이드 2026: 일본 와인의 발상지, 포도 언덕 지하 와인 카브부터 호토까지

도쿄에서 기차를 탄다. 신주쿠에서 특급이면 1시간 반. 시간이 있다면 로컬 열차로 2시간. 창밖으로 도시가 걷히고 산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조금씩 숨이 편해진다. 이 구간이 좋다. 도착지보다 이 이동 자체가 여행이 되는 것.

가쓰누마부도쿄역. 일본 와인의 발상지. 역 광장 너머로 포도밭이 펼쳐지고, 플랫폼 지붕에도 포도 덩굴이 감겨 있다. 처음엔 장식인 줄 알았다가, 진짜 포도가 주렁주렁 달린 걸 보고야 웃었다.

왜 야마나시인가

일본에 와인 산지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 야마나시현 가쓰누마(勝沼)는 메이지 시대인 1877년, 일본 최초의 민간 와이너리가 세워진 곳이다. 그해 양조 기술 유학생을 프랑스로 보냈고, 이후 고슈(甲州) 포도 품종을 중심으로 150년 가까이 와인을 만들어왔다.

지금은 가쓰누마 한 지역에만 40개 이상의 와이너리가 있다. 일본 와인 생산량의 약 27%가 야마나시산이다. 고슈 와인은 2010년 국제와인기구(OIV)에도 등록됐다. 가볍고, 산뜻하고, 일식과 잘 맞는다.

그런데도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가쓰누마는 그다지 알려진 곳이 아니다. 후지산 가는 길에 지나치거나, 야마나시라는 이름을 흘려듣는 정도. 그게 오히려 이 여행의 묘미다.

도쿄에서 가는 법

  • 특급 열차 (추천): 신주쿠역에서 JR 아즈사·가이지 탑승 → 가쓰누마부도쿄역 하차. 약 1시간 35분. 자유석 기준 편도 2,860엔.
  • 일반 열차: 신주쿠 → 다카오역 환승 → JR 주오 본선 → 가쓰누마부도쿄역. 약 2시간~2시간 20분. 편도 1,980엔. 차창 밖 산 풍경을 천천히 즐기고 싶다면 이 쪽이 더 낫다.
  • 주의: 가쓰누마부도쿄역은 주말·공휴일에만 특급이 서는 경우가 있다. 평일 방문이라면 시오야마역(塩山駅)에서 내려 택시나 버스를 이용한다.

💡 꿀팁: 도쿄 방면으로 돌아올 때는 저녁 열차 시간을 미리 확인할 것. 와인 시음 후에 예상보다 열차 간격이 길어 당황할 수 있다.

가쓰누마부도쿄역에서 첫 한 시간

역을 나오면 바로 관광 안내소가 있다. 와이너리 지도와 주변 볼거리를 챙긴다. 역 앞 광장에는 고슈식 포도 덩굴 파고라가 있고, 진짜 포도가 달려 있다. 9~10월 수확 시즌에 오면 손에 닿을 만큼 가까이 있다.

역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한 와이너리들이 있다. 대부분 역에서 1~3km 거리. 와이너리를 여러 곳 돌 계획이라면 자전거 렌탈도 된다(역 근처 대여소 기준 1일 800~1,200엔). 다만 술 마실 예정이라면 자전거는 주의.

택시도 운행한다. 시오야마역 기준 만즈 와인까지 무료 셔틀을 운행하는 와이너리도 있으니 방문 전 확인해두면 좋다.

부도의 언덕 (ぶどうの丘)

가쓰누마 와이너리 투어의 핵심 거점. 역에서 도보 20분, 또는 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언덕 위의 복합 시설이다. 포도밭이 사방으로 펼쳐지는 전망과, 지하 와인 카브, 레스토랑, 온천, 숙박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입장은 무료. 지하 와인 카브 시음만 유료다.

지하 와인 카브 — 타스트뱅 1,800엔

부도의 언덕 지하에는 2개의 터널형 공간이 있다. 한쪽은 화이트 와인, 다른 쪽은 레드 와인. 130종, 약 2만 병의 고슈 와인이 진열되어 있고, 중앙의 오크통 위에 시음용 와인이 놓여 있다.

입구에서 타스트뱅(タストヴァン)이라는 작은 시음 용기를 1,800엔에 구입하면, 이 공간의 모든 와인을 자유롭게 시음할 수 있다. 정해진 시간 제한은 없다.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고, 각인 서비스도 있다.

⚠️ 주의: 와인 종류가 130가지다. 욕심껏 다 마시려다가는 기차를 놓친다. 고슈 화이트, 머스캣 베일리 A 레드, 스파클링 순으로 순서를 정해두면 편하다.

시음 후 마음에 드는 와인을 구입할 수 있다. 가격은 1,500엔~8,000엔대. 병을 캐리어에 담아 가기 어렵다면 택배 발송도 가능하다(일본 내 주소 필요).

바비큐 가든 테라스

부도의 언덕 내 레스토랑 중 하나가 개방형 테라스 바비큐 가든이다. 포도밭을 내려다보며 석판 구이로 고기를 먹는다. 세트 메뉴 기준 2,500엔~3,500엔. 하우스 와인 한 병 추가하면 포도밭 전망과 함께 점심이 완성된다.

가격 대비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특히 수확철(9~10월)에는 포도 색이 짙어져 경치가 더 좋다. 예약 없이 가면 웨이팅이 있을 수 있다.

추천 와이너리 4곳

부도의 언덕 외에도 개별 와이너리 방문을 권한다. 각 와이너리마다 스타일과 분위기가 다르다.

1. 샤토 메르시앙 가쓰누마 와이너리 (Chateau Mercian)

가쓰누마를 대표하는 와이너리 중 하나. 와인 자료관, 테이스팅 룸, 숍이 갖춰져 있고, 정기 투어는 무료(사전 예약 필수). 20종류 이상의 와인을 시음 카운터에서 즐길 수 있다. 건물이 깔끔하고 정원도 잘 가꿔져 있어 사진 찍기 좋다. 국제 와인 대회에서 수상한 이력도 있는 고품질 와이너리.

2. 루미에르 와이너리 (Lumière Winery)

1885년(메이지 18년) 창업. 국가 등록 유형문화재인 석조 발효조가 있다. 돌로 쌓은 창고 안에서 오랜 역사를 실감하는 투어가 인상적이다. 병설 레스토랑 '젤코바(Zelkova)'에서는 야마나시산 식재료와 와인 페어링을 즐길 수 있다. 고슈 오렌지 와인이 특히 인기.

3. 만즈 와인 가쓰누마 와이너리 (Mann's Wine)

1962년 창업. 프리미엄 라인인 '솔라리스(Solaris)' 시리즈가 유명하다. 시오야마역에서 무료 셔틀 택시를 운행해 접근성이 좋다. 연 2~3회 와인 이벤트를 개최하며, 특히 11월 신주(햇와인) 행사 때 방문하면 갓 담근 와인을 맛볼 수 있다.

4. 쿠람본 와인 (Kurambon Wine)

전통 일본 가옥 건물이 특징. 화학비료·제초제를 쓰지 않는 자연재배 포도밭을 운영한다. 규모는 작지만 와이너리의 철학이 뚜렷하다. 자연주의 와인에 관심 있다면 여기가 취향에 맞을 것.

💡 와이너리 방문 팁: 주말에는 예약 없이 갈 경우 대기가 있을 수 있다. 특히 9~11월 수확 시즌에는 사전 예약이 거의 필수. 각 와이너리 공식 사이트에서 예약하거나, 운영 시간을 미리 확인할 것.

고슈 와인이란 무엇인가

고슈(甲州)는 일본 고유의 화이트 와인용 포도 품종이다. 약 1,300년 전 일본에 들어와 가쓰누마 지역에서 현지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알이 크고, 껍질은 핑크빛이 돈다. 산뜻한 산미와 은은한 과일 향이 특징이며, 타닌이 적어 와인 입문자도 마시기 편하다.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같은 국제 품종에 비해 향이 섬세하다. 스시, 튀김, 흰 살 생선 요리와 잘 어울린다. 2010년 국제와인기구(OIV) 등록 이후 해외에서도 평가가 올라가고 있다.

레드 와인 품종으로는 머스캣 베일리 A(Muscat Bailey A)가 대표적이다. 1927년 와인학자 가와카미 젠베에가 교배한 일본 고유 품종. 딸기·체리 같은 달콤한 향, 부드러운 질감. 가볍고 마시기 편한 레드다.

호토 (ほうとう) — 야마나시 향토 음식

와이너리 투어를 마치고 나면 고후시(甲府市)까지 발을 뻗어보는 것도 좋다. 가쓰누마에서 JR로 25분. 야마나시현의 현청 소재지다.

고후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은 호토(ほうとう). 밀가루를 반죽해 넓적하게 자른 면을 미소 국물에 끓인 향토 요리다. 단호박, 고구마, 버섯, 계절 채소가 들어간다. 면이 우동처럼 탄력있지 않고, 국물을 흡수해 걸쭉해지는 게 특징이다.

고사쿠(小作)가 야마나시 내 10여 개 지점을 운영하는 대표 호토 전문점이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호박 호토(かぼちゃほうとう). 1인분 1,320엔. 점심 시간대에는 30분~1시간 웨이팅이 있을 수 있다. 이름을 적어두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기다리는 것도 이 여행의 리듬 중 하나다.

⚠️ 호토는 꽤 양이 많다. 바비큐 점심을 먹었다면 호토는 저녁으로 미루는 게 낫다.

마이즈루 성터 공원 (舞鶴城公園)

고후역에서 도보 3분. 고후성(甲府城) 터다. 성 건물 자체는 남아 있지 않지만 성곽 석벽, 복원된 문과 망루를 볼 수 있다. 높은 곳에서 고후 분지를 내려다보고, 날씨가 좋으면 후지산도 보인다. 무료다. 30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시즌별 방문 가이드

  • 9~10월 (최성수기): 포도 수확 시즌. 포도 따기 체험 가능. 가쓰누마 그레파크 기준 성인 1,500엔(샤인 머스캣 기준). 와이너리마다 수확 행사가 열린다. 이 시즌이 가장 활기차고, 그만큼 사람도 많다.
  • 11월: 신주(新酒, 햇와인) 해금 시즌. 만즈 와인 가쓰누마 페스타가 이 시기에 열린다. 신선한 햇와인을 현지에서 마시고 싶다면 11월이 정답이다.
  • 3~4월: 기온 마쓰리 시즌. 역 앞 진로쿠자쿠라(甚六桜) 벚꽃과 포도밭이 겹친다. 인파는 적고, 경치는 예쁘다.
  • 5~8월 (비수기): 더위가 있지만 관광객이 적다. 와이너리 예약도 비교적 수월하다. 6월 이후에는 포도 새순이 자라 초록빛 포도밭을 볼 수 있다.

전체 당일치기 일정 (예시)

  • 07:30 신주쿠역 출발 (특급 아즈사)
  • 09:10 가쓰누마부도쿄역 도착
  • 09:20~10:30 역 근처 산책 + 와이너리 한 곳 방문 (샤토 메르시앙 등)
  • 10:40 부도의 언덕으로 이동 (도보 또는 버스)
  • 11:00~12:00 지하 와인 카브 시음
  • 12:00~13:30 바비큐 가든 또는 주변 레스토랑에서 점심
  • 13:40~14:30 두 번째 와이너리 방문 (루미에르 또는 쿠람본 등)
  • 15:00~16:30 고후시 이동 → 마이즈루 성터 공원
  • 17:00~18:30 고사쿠에서 호토 저녁
  • 19:00 고후역에서 특급 귀경 (신주쿠 도착 20:30)

📝 현실적인 메모: 와인을 진지하게 마실 생각이라면 고후 연장 코스를 빼고 가쓰누마에서 더 오래 머무는 게 낫다. 지하 카브에서 천천히 시음하다 보면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난다.

짐과 와인 구입 팁

  • 와인 병은 깨지기 쉽고 무겁다. 와이너리에서 구입할 경우 와인 전용 포장 박스나 쿠션재를 꼭 챙길 것.
  • 일본 내 배송이 가능한 주소가 있다면 현지에서 택배를 보내는 것이 편하다. 국내 숙소로 보내고, 귀국 시 위탁수하물로 가져오는 방법이 현실적이다.
  • 한국으로의 직접 국제 배송은 와이너리에서 직접 하지 않는 곳이 많다. 현지 배송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직접 캐리어에 넣어 위탁수하물로 가져오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 병 1~2개 정도는 와인 전용 파우치(돈키호테·100엔숍에서 구입 가능)로 캐리어 중앙에 넣으면 충분히 안전하다.

마치며

가쓰누마에 처음 갔을 때 생각은 이랬다. 와인이 얼마나 대단하겠어. 결국 포도주겠지.

지하 카브에서 혼자 타스트뱅 들고 이 와인 저 와인 조금씩 마시다 보니, 어느 순간 같은 고슈 품종인데 와이너리마다 맛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한 와이너리가 산뜻하면, 다른 건 묵직하고, 또 다른 건 과일 향이 살아 있었다.

그게 와인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아니었다. 그냥, 이 지하 공간에서 천천히 마시는 시간 자체가 좋았다. 사람도 없고, 조용하고, 서늘하고.

포도밭 사이를 걷고, 바비큐 테라스에서 포도밭을 내려다보고, 지하에서 와인을 마시다 기차 시간이 다 됐다. 충분히 좋은 하루였다.

에디터 시우

혼자 떠나는 여행이 제일 좋은 사람. 관광지보다 골목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