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山口)를 처음 들었을 때 떠오르는 게 없다면 정상이다. 오사카도 아니고, 교토도 아니고, 후쿠오카 옆에 있는 이 현은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비밀에 가까운 곳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입이 벌어진다. 코발트블루 바다 위를 달리는 1,780미터짜리 다리, 해안 절벽에 빼곡히 박힌 123개의 붉은 도리이, 연중 17도를 유지하는 일본 최대의 석회 동굴. 이 세 가지가 전부 렌터카 하루 코스에 들어간다.
왜 야마구치인가
후쿠오카에서 렌터카로 1시간 20분이면 아키요시도 동굴이 나온다. 조금 더 달리면 쓰노시마 대교, 모토노스미 이나리 신사까지 닿는다. 비행기 타고 일본 와서 하루를 이 루트에 쓰면, 대도시 여행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된다. 유명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고, 유명하지 않아서 오히려 제대로 볼 수 있다.
단, 렌터카가 필수다. 대중교통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후쿠오카 공항이나 하카타역 인근 렌터카 업체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면 하루 코스가 완성된다.
추천 당일치기 루트 (후쿠오카 출발)
- 07:00 — 하카타역 또는 후쿠오카 공항 인근 렌터카 픽업
- 09:00~10:30 — 아키요시도 동굴 + 아키요시다이 고원
- 11:00~12:00 — 미치노에키 오후쿠(道の駅 おふく)에서 점심
- 12:30~13:00 — 벳푸 벤텐 연못(別府弁天池) 잠깐 들름
- 13:30~14:30 — 쓰노시마 대교 전망 + 섬 드라이브
- 14:30~16:00 — 모토노스미 이나리 신사
- 18:30 — 후쿠오카 귀환
총 주행 거리는 왕복 약 250~280km. 이동이 많지만 고속도로 위주라 피로도는 생각보다 낮다.
아키요시도 동굴 (秋芳洞) — 17도의 지하 세계
일본 최대의 석회 동굴이다. 총 길이는 약 10km에 달하지만 관광 코스는 약 1km로 정해져 있다. 일반 관람에 40분~1시간 정도 걸린다. 동굴 내부 온도는 연중 17도. 여름에 가면 입구에서 바로 냉기가 쏟아져 나온다. 외부가 35도를 넘는 한여름에 여기 들어가면 몸이 감사하다는 걸 안다.
안에는 다타미이시(畳石, 연못 바닥에 깔린 석회암 층계)부터 오가네야마(黄金山, 황금빛 대형 종유석 집합체)까지 이름 붙여진 지형물이 이어진다. 어디가 어딘지 몰라도 상관없다. 그냥 걸으면 계속 감탄이 나온다.
- 입장료: 성인 1,600엔 / 중학생 1,300엔 / 초등학생 850엔
- 어드벤처 코스: +300엔 (일반 코스와 별도)
- 운영 시간: 8:30~17:30 (마지막 입장 16:30) / 12~2월은 16:30까지
- 휴무: 연중무휴
- 입구: 메인 입구(버스터미널·주차장에서 가까움), 쿠로타니 입구, 엘리베이터 입구(아키요시다이 전망대 연결) 3곳
아키요시다이 (秋吉台) — 동굴 위의 별세계
동굴 위로 올라가면 아키요시다이 카르스트 고원이다. 석회암 기둥들이 초원 위에 솟아 있는 풍경은 일본 같지 않다. UNESCO 지오파크로 지정된 곳으로, 동굴과 고원이 하나의 지형 시스템으로 연결된다. 동굴 관람 후 엘리베이터 입구로 나오면 고원에 올라설 수 있다. 30분이면 충분하다.
쓰노시마 대교 (角島大橋) — 일본 자동차 광고의 그 다리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이다. 총 길이 1,780m, 주변 섬까지 이어지는 이 다리 아래로 코발트블루와 에메랄드그린이 섞인 바다가 펼쳐진다. 통행료는 없다. 그냥 달리면 된다.
다리 전체를 제대로 찍으려면 본토 쪽 아마가세 공원(あまがせ公園)의 전망 포인트로 가야 한다. 무료 주차장이 있고, 여기서 보는 뷰가 광고에서 보던 그 구도다.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바다색이 가장 선명하다. 흐린 날이나 이른 아침에는 색이 탁하다.
- 통행료: 무료
- 전망 포인트: 아마가세 공원 (본토 쪽) — 무료 주차
- 주의: 다리 위 정차 금지. 강풍 시 이륜차·보행자 통행 제한
- 베스트 타임: 맑은 날 오전 11시~오후 2시
모토노스미 이나리 신사 (元乃隅神社) — CNN이 뽑은 절경
CNN이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31선"에 포함시킨 곳이다. 해안 절벽을 따라 123개의 붉은 도리이가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파란 바다가 보인다. 국내 여행 커뮤니티에서는 "도리이와 바다"의 조합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보면 사진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도리이 길은 오르막이다. 입구에서 정상 신사까지 약 100m를 올라가야 한다. 숨이 찬다. 바람도 강하다. 파도 소리가 꽤 크다. 그 모든 게 분위기를 만든다.
- 입장료: 무료
- 주차: 승용차 최초 1시간 300엔, 이후 100엔 추가 (최대 500엔)
- 운영 시간: 9:30~16:30
- 야간 출입·촬영: 금지
류구노시오후키 (龍宮の潮吹き)
신사 근처에 있는 자연 현상이다. 파도가 암반 틈으로 밀려들어오면서 물기둥이 솟구친다. 날씨나 조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좋은 날에는 꽤 높이 올라간다. 신사 들어가기 전에 먼저 여기 들렀다 가는 게 효율적이다.
접근 방법 정리
렌터카 (강력 추천)
야마구치현 대부분의 명소는 렌터카 없이는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하다. 대중교통 배차 간격이 극히 드물고, 아예 없는 구간도 있다.
- 후쿠오카 공항/하카타역 → 아키요시도 동굴: 약 1시간 20분 (고속도로 이용)
- 후쿠오카 → 쓰노시마 대교: 약 2시간 30분
- 후쿠오카 → 모토노스미 신사: 약 2시간 30분 (쓰노시마에서 20분 추가)
- 한국 운전면허증 + 국제 운전면허증 필요 (출발 전 필수 발급)
- 일본은 좌측 통행
- 고속도로 통행료 왕복 3,000~5,000엔 예상 (구간에 따라 다름)
- 내비게이션 목적지 설정: 모토노스미 신사는 "龍宮の潮吹き"로 검색하면 더 잘 잡힌다
대중교통 (아키요시도 동굴만 가능)
- 신야마구치역(新山口駅)에서 방초 버스 또는 JR 버스로 약 40~45분, 1,170~1,230엔
- JR 패스는 JR 버스 노선에만 유효
- 쓰노시마, 모토노스미 신사는 대중교통으로 접근 사실상 불가 (최근 역에서 택시로 편도 3,000엔 이상)
렌터카 여행 팁
- 후쿠오카 공항 국제선 터미널에 타임스카렌탈(Times Car Rental) 등 주요 업체 입점
- 4인 기준 소형차 12시간 풀커버 보험 포함 약 6~8만 원 (시기별 상이)
- 주유비 왕복 250km 기준 1,500~2,000엔 예상 (레귤러 가솔린 기준)
- 구글맵 오프라인 지도 미리 저장 → 산간지역 전파 약한 구간 대비
- 동굴 입구 근처 100엔 주차장 이용 시 절약 가능
시즌별 포인트
- 여름 (6~8월): 아키요시도는 피서로 최적. 쓰노시마 해변 수영 가능. 모토노스미는 골든위크·오봉 제외 평일만 가능
- 봄 (3~5월): 아키요시다이 고원에서 들불 태우기 행사 후 새잎 돋는 풍경 (3월 초 참조)
- 가을 (9~11월): 단풍 없지만 인파가 적어 여유롭다
- 겨울 (12~2월): 동굴은 오히려 따뜻해서 겨울에도 쾌적. 모토노스미 신사 주말 통행 제한 없음
야마구치 시내 반나절 보너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야마구치 시내의 류리코지(瑠璃光寺) 5층탑을 들러도 좋다. 일본 3대 명탑으로 꼽히는 이곳은 무로마치 시대(15세기 초)에 지어진 탑으로, 주변 연못과 어우러진 모습이 조용하고 아름답다. 관광객도 많지 않다. 주차장은 무료.
마치며
야마구치는 거창하게 홍보하지 않는다. 특별한 캐릭터도 없고, 유명 맛집 줄도 없다. 그냥 거기 있다. 에메랄드 바다가, 붉은 도리이가, 17도짜리 동굴이. 후쿠오카에서 가깝고, 사람이 별로 없고, 보는 순간 멈추게 된다. 알아서 다녀오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