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하이킹을 한다고 하면 다들 잠깐 멈칫한다. 마천루와 네온사인, 끝없이 이어지는 지하철 노선이 먼저 떠오르는 도시에서 산이라니. 그런데 사실 도쿄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하이킹 도시다. 서쪽으로 조금만 나가면 곧장 산이다. 전철 타고 한 시간이면 이끼 낀 계곡이 나온다.
나는 혼자 도쿄에 갈 때마다 적어도 하루는 산에서 보낸다. 사람 없는 산길을 걷다 보면 도쿄가 다르게 보인다. 이 가이드는 그 경험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다카오산, 미타케산, 쓰쿠바산. 세 곳 모두 당일치기로 충분하고, 특별한 장비 없이 스니커즈 하나면 된다.
① 다카오산(高尾山) — 도쿄와 가장 가까운 산, 그러나 얕보면 곤란
신주쿠에서 게이오선 특급을 타면 50분, 390엔이면 다카오산구치역이다. 일본에서 연간 등산객 수 1위, 2007년 미슐랭 가이드 별 3개. 숫자로 보면 관광지처럼 들리지만, 막상 올라보면 산이 꽤 진지하다.
코스 선택
- 1호로 (오모테산도 코스) — 3.8km, 정상까지 약 100분. 포장 길이라 초보자에게 최적. 야쿠오인 신사를 지나며 굵직한 삼나무들 사이를 걷는다.
- 4호로 (현수교 코스) — 1.5km, 약 50분. 다카오산 유일의 현수교를 건너는 코스. 강 위를 걷는 기분이 꽤 독특하다.
- 6호로 (비와 폭포 코스) — 불교 수행자들이 찬물로 몸을 씻던 비와 폭포를 지난다. 여름엔 서늘하다.
- 다카오산-진마산 종주 — 15.3km, 약 5시간 20분. 능선이 이어지는 상급 코스. 산에 좀 다녀본 사람이라면 이쪽을 권한다.
케이블카 & 에코 리프트
굳이 처음부터 걷지 않아도 된다. 케이블카(편도 490엔, 왕복 950엔)로 중턱(해발 472m)까지 올라간 후 정상을 향하는 것도 충분히 제대로 된 하이킹이다. 케이블카는 약 6분, 리프트는 느긋하게 12분.
정상에서 뭘 보나
해발 599m 정상에서 날씨 좋은 날엔 후지산이 보인다. 눈 쌓인 후지산 실루엣이 선명하게 보이는 날은 겨울과 봄 초입 사이. 여름엔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는 날도 많아서, 그냥 구름바다를 내려다보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내려와서 뭘 먹나
- 토로로 소바 — 다카오산 명물 음식. 산마(참마)를 갈아 얹은 소바. 역 주변 식당 어디서나 판다.
- 텐구야키(天狗焼き) — 검은콩 팥소가 든 구운 과자. 줄이 길지만 기다릴 만하다.
- 다카오산 온천 고쿠라쿠유(京王高尾山温泉 / 極楽湯) — 다카오산구치역 바로 옆. 하산 후 발 담그기에 최적. 평일 1,000엔, 주말 1,200엔.
② 미타케산(御岳山) — 지브리 영화 같은 숲, 도심 탈출의 정수
미타케산을 처음 갔을 때 솔직히 좀 놀랐다. 이런 숲이 도쿄 안에 있다는 게. 이끼 낀 바위 사이로 맑은 계류가 흐르고, 천년 된 나무가 그냥 서 있다. 지브리 영화 배경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장소다.
가는 방법
- 신주쿠역 → JR 주오선·오메선 → 미타케역 (약 90분, IC카드 사용 가능)
- 미타케역 → 버스 → 케이블 시타(ケーブル下) 정류장 (약 10분)
- 케이블카 → 미타케산역 (약 6분, 편도 600엔, 왕복 1,130엔)
신주쿠에서 미타케역까지 편도 약 970엔. 케이블카 왕복 포함하면 총 교통비는 3,000엔 내외다.
추천 코스: 록 가든 순환 (약 2.5시간)
- 케이블카 → 미타케산역 → 무사시미타케 신사 참배 (20분)
- 록 가든(Rock Garden) 진입 — 이끼 덮인 바위, 아야히로 폭포, 나나이와 폭포 (1시간 30분)
- 다시 무사시미타케 신사 방면으로 복귀 → 식사 후 케이블카 하산
무사시미타케 신사
해발 929m 정상에 자리한 신사. 역사가 2000년이 넘는다. 늑대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독특한 신앙이 남아 있어 경내 곳곳에 늑대 상이 있다. 관광지 느낌보다는 진짜 산 신앙의 분위기가 남아 있다. 이른 아침에 올라가면 참배 온 동네 어르신들과 마주치는데, 그게 또 좋다.
히노데산 연계 코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미타케산에서 히노데산(日の出山, 902m)까지 약 40분 능선 트레일을 이어서 걷는다. 정상에서 간토 평야가 통째로 보인다. 히노데산에서 내려오면 쓰루쓰루 온천이 있어서 귀가 전 온천으로 마무리하는 코스가 완성된다.
③ 쓰쿠바산(筑波山) — 일본 100명산 중 가장 오르기 쉬운 산
877m짜리 산이 왜 일본 100명산에 들어가 있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높이 기준이 아니라 역사와 풍경 때문이다. 관동 평야 한가운데 홀로 솟은 산이라 멀리서도 보이고, 예부터 '동쪽의 후지산'이라 불렸다. 쓰쿠바산 자체가 신사의 신체(神体)로 여겨진다.
가는 방법
- 아키하바라역 → 쓰쿠바 익스프레스(TX) → 쓰쿠바역 (약 45분, 1,210엔)
- 쓰쿠바역 → 쓰쿠바 센터 버스 터미널 → 쓰쿠바산 신사 입구 버스 정류장 (약 36분, 760엔)
- 버스 정류장에서 케이블카 미야와키역까지 도보 5분
두 봉우리
- 난타이산(男体山, 871m) — 케이블카로 접근. 왕복 1,070엔. 남성신 이자나기를 모신다.
- 뇨타이산(女体山, 877m) — 로프웨이로 접근. 왕복 1,300엔. 여성신 이자나미를 모신다. 정상 전망이 더 좋다는 평.
두 봉우리를 잇는 산 정상 연결로는 약 35분. 두 봉우리를 모두 밟고 싶다면 케이블카로 올라가서 정상 연결로로 이동 후 로프웨이로 내려오는 루트가 가장 자연스럽다.
쓰쿠바산에서 꼭 보는 것들
- 쓰쿠바산 신사 — 3000년 역사. 경내 즈이신몬(随神門)은 1633년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세운 건축물. 인연과 인간관계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 가마이시(がまいし, 두꺼비 바위) — 뇨타이산 방향 정상 연결로에 있는 기암. 각도에 따라 입 벌린 두꺼비처럼 보인다. 입 안에 작은 돌을 던져 넣으면 금전운이 좋아진다는 전설이 있다.
- 벤케이 나나모도리(弁慶七戻り) — 시라쿠모바시 코스에 있는 돌문. 거대한 바위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절묘하게 걸쳐져 있다. 보는 순간 왜 이 이름이 붙었는지 안다.
정상 뷰와 명물 음식
맑은 날 뇨타이산 정상에서는 도쿄까지 보인다. 멀리 후지산도 보이는 날이 있다. 고마 전망대 2층 식당에서 쓰쿠바 우동을 먹을 수 있다. 지역 특산 쓰쿠바 돈코 간장으로 국물을 낸다. 산 정상에서 먹는 우동은 어디서 먹어도 맛있게 느껴진다는 게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세 산 한눈 비교
- 다카오산 — 신주쿠에서 50분 / 390엔 / 해발 599m / 케이블카 950엔 왕복 / 처음 가는 사람에게 최적 / 정상에서 후지산 조망 가능
- 미타케산 — 신주쿠에서 90분 / 970엔 / 해발 929m / 케이블카 1,130엔 왕복 / 이끼 계곡·록 가든이 압권 / 반려견 동반 가능
- 쓰쿠바산 — 아키하바라에서 80분 / 1,970엔 / 해발 877m / 케이블카 1,070엔 or 로프웨이 1,300엔 왕복 / 두 봉우리 + 3000년 신사 / 가을 단풍·야경 최강
하이킹 준비물 체크리스트
- 신발 — 길들여진 운동화. 샌들은 절대 안 된다. 비 온 다음 날이면 미끄러지는 구간이 생긴다.
- 물 — 500ml 이상. 정상 매점 음료가 비싸기도 하지만 여름엔 정말로 필요하다.
- 간식 — 초콜릿, 사탕, 주먹밥. 허기지면 발이 무거워진다.
- 겉옷 — 산은 도심보다 2~3도 낮다. 얇은 바람막이 하나 챙기면 된다.
- 쓰레기봉투 — 산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본인이 가져온다. 일본 산에는 쓰레기통이 없다.
- IC카드(스이카·파스모) — 교통 요금 정산 편하고, 정상 자판기에서도 쓸 수 있다.
- 쓰쿠바산은 지정 등산로 외 진입 금지. 동식물·광물 채취도 금지다.
- 다카오산 주말은 정상까지 행렬이 길다. 오전 7~8시에 출발하는 게 좋다.
- 여름 하이킹은 자외선 차단제 필수. 능선은 그늘이 없다.
- 미타케산 케이블카는 동절기 운행 시간이 단축된다. 출발 전 홈페이지 확인.
결론
세 곳 다 좋다. 처음이라면 다카오산, 조용히 숲에 있고 싶다면 미타케산, 일본 100명산에 발도장 찍고 싶다면 쓰쿠바산. 도쿄에서 이렇게 쉽게 산에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다음 일정에 하루는 자연스럽게 비워두게 된다.
산에서 내려오면 도시가 달리 보인다. 그게 다카오산의, 미타케산의, 쓰쿠바산의 진짜 가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