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에 가면 꼭 먹어야 한다는 거, 알고는 있었는데
라멘이요? 징기스칸이요? 물론 다 맞는 말이에요. 근데 저는 이번에 삿포로 가서 스프카레 네 그릇 먹고 왔습니다. 아침부터 줄 서고, 점심에도 줄 서고, 저녁엔 웨이팅 없는 데 찾아서 또 먹고. 이게 중독이에요. 진짜로.
스프카레는 삿포로가 발상지인 카레 요리인데, 우리가 아는 일반 카레랑 좀 달라요. 걸쭉하게 밥 위에 얹어 먹는 그 카레가 아니라, 국물이 거의 묽은 수프 같아요. 근데 그 국물에서 치킨이나 야채를 천천히 우려낸 깊은 맛이 나거든요. 통 가지, 연근, 감자, 파프리카 같은 야채들이 형태 그대로 살아 있고,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넣은 것처럼 큼직한 치킨이 뼈째 들어가는 경우도 있어요. 밥은 별도로 나와서, 한 숟갈씩 카레에 담가 먹거나 카레를 퍼서 밥 위에 올려 먹는 방식이에요.
처음 먹으면 '이게 카레야?' 싶을 수도 있는데, 두 번째 숟갈부터는 손이 멈추질 않습니다.
먹기 전에 알면 더 잘 먹는 것들
- 매운맛 레벨 선택: 가게마다 다르지만 보통 10~30단계로 나뉘어요. 한국인 기준으로 매운 걸 좋아한다면 레벨 10~15 정도가 적당해요. 처음이면 레벨 3~5부터 시작하는 게 좋아요. 생각보다 뒤에 올라오거든요.
- 토핑 추가: 치킨, 돼지, 야채 기본 구성에 에비(새우), 오징어, 양고기 등을 추가할 수 있어요. 양고기(램)는 호불호가 갈리니 처음이면 치킨이나 돼지고기로 시작하는 걸 추천해요.
- 밥 먹는 법: 밥을 카레에 한꺼번에 다 넣지 말고, 조금씩 떼서 담갔다 먹는 게 더 맛있어요. 스프가 식는 걸 방지하고 마지막 한 입까지 제대로 즐길 수 있거든요.
- 가격대: 보통 1,200~1,800엔 정도예요. 런치 세트로 먹으면 밥 리필이나 샐러드가 포함되는 경우도 있어요.
스아게+ (Suage+) — 삿포로 스프카레의 상징
스스키노에서 올라오는 길, '스프카레의 성지'라고 불리는 가게예요. 스아게 플러스, 줄여서 그냥 스아게라고 많이 부르는데, 원래 이 동네 스프카레의 원조는 아잔타라는 가게라고 해요. 근데 아잔타는 외곽에 있어서 차 타고 가야 하고, 지금은 사실상 휴업 중이에요. 그래서 지금 삿포로에서 갈 수 있는 최고의 명점으로는 스아게가 첫 손에 꼽히는 거예요.
- 스아게 플러스(본점)는 항상 웨이팅이 깁니다. 2호, 3호, 4호점은 그나마 줄이 좀 짧아요. 같은 메뉴, 같은 맛이니 본점 고집하지 말고 다른 호점으로 가도 돼요.
- 대표 메뉴는 치킨 수프카레로, 뼈째 조리된 닭다리가 통째로 들어가요. 살이 폭신폭신하게 익어 있어서 젓가락으로 건드리면 그냥 떨어져요.
- 한국 홍대에도 지점이 생겼는데, 줄이 꽤 서요. 한국에서 미리 맛을 봐도 되지만, 삿포로 현지에서 먹는 맛이랑은 분위기가 달라요.
가라쿠 (Garaku) — 니조시장 바로 옆, 국물이 좀 더 진한 편
삿포로 여행 유튜브만 봐도 스아게와 함께 항상 나오는 이름이 가라쿠예요. 니조시장 근처 건물 지하에 있는데, 찾기가 좀 헷갈릴 수 있어요. 건물 자체가 아니라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거든요.
- 가라쿠 국물은 스아게보다 좀 더 진하고 향이 강한 편이에요. 호두나 코코넛밀크 계열의 향이 나서 처음엔 낯설 수 있는데, 적응되면 이쪽이 더 취향이 되는 분들도 많아요.
- 가라쿠 밀키트를 마트에서도 살 수 있어요. 편의점이나 대형 마트 어디 가도 거의 가라쿠 밀키트로 팔릴 정도로 유명한 브랜드예요. 귀국할 때 기념품으로 챙기기도 좋아요.
- 점심 타임에 줄이 많이 서요. 평일 오전 오픈 직후나 저녁 시간을 노리면 좀 수월해요.
스프카레 킹 (Soup Curry King) — 웨이팅 적고 맛은 본점급
솔직히 스아게·가라쿠 웨이팅에 지쳐서 찾은 가게인데, 결과적으로 제 최애가 됐어요. 다누키코지 근처에 있어서 위치도 좋은데, 상대적으로 줄이 훨씬 짧아요. 본점은 도요히라에 있지만 시내점에서 먹어도 충분해요.
- 보편적인 스프카레 맛이라고 보면 되는데, 밸런스가 잘 잡혀 있어요. 치킨도 부드럽고, 야채도 형태가 살아있고, 국물이 너무 강하지 않아요.
- 처음 스프카레를 먹어보는 분들한테 오히려 이쪽을 먼저 추천하고 싶어요. 너무 개성 강한 맛보다 '아 스프카레가 이런 음식이구나'를 제대로 느낄 수 있거든요.
- 타베로그 평점도 나쁘지 않고, 관광객보다 현지 직장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느낌이에요.
라마이 (Ramai) — 남아시아 컨셉, 라씨 맛집
스스키노 근처에 있는 가게인데, 동남아·남아시아 분위기를 강하게 잡은 인테리어가 눈에 띄어요. 스프카레 맛은 다른 집들보다 향신료를 좀 더 강하게 써서, 인도 카레 좋아하는 분들한테 특히 잘 맞아요.
- 라씨가 진짜 맛있어요. 스프카레 먹으면서 라씨 한 모금 하면 매운맛이 잡히는데, 이 조합이 너무 좋아요. 라씨 때문에 한 번 더 오고 싶다는 말이 나올 정도예요.
- 라마이는 체인이 많이 퍼졌어요. 홋카이도 전역은 물론 도쿄에도 세 지점이 생겼을 정도로 전국구 브랜드가 됐어요. 삿포로에서 못 먹었으면 도쿄 여행 때 먹어도 돼요.
- 토핑 선택지가 다른 가게보다 넉넉한 편이에요. 기본 치킨·야채 구성 외에 에비, 가리비 등 홋카이도 해산물 토핑도 들어가요.
카리야 콩구 (CURRY YA! CONG) — 타베로그 스프카레 1위
타베로그 수프카레 카테고리에서 3.82점을 받는 가게예요. 이 점수가 얼마나 높은 건지 아는 분들은 아시죠. 일본 맛집 평점에서 3.5 넘으면 진짜 맛집 인증이거든요.
- 스스키노 거리에서 좀 걸어야 하고, 가게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요. 웨이팅이 생각보다 길 수 있어요.
- ⚠️ 매주 수요일 휴무입니다. 수요일에 맞춰 삿포로 일정 짜신 분들은 꼭 확인하세요. 직접 가서 허탕 치는 경우가 꽤 많아요.
- 국물이 다른 가게들보다 좀 더 향이 복잡해요. 여러 향신료를 레이어링한 느낌인데, 먹을수록 깊어지는 맛이에요.
삿포로 스프카레, 웨이팅 줄이는 법
- 오픈런: 가라쿠·스아게 모두 오픈 직후 15~20분이 제일 여유 있어요. 11:30 오픈이면 11:15분에 도착하는 게 이상적이에요.
- 평일 오후 2시 이후: 점심 피크가 끝나는 시간대로, 이때 가면 30분 이상 기다리는 경우가 줄어들어요.
- 1~2인이면 스아게 2·3호점 활용: 소규모 테이블이 많아서 회전이 빠른 편이에요.
- 비 오는 날: 관광객이 줄어드는 날이 웨이팅 가장 짧은 날이에요. 비 오는 삿포로에서 따뜻한 스프카레 먹는 것도 낭만이에요.
징기스칸·미소라멘이랑 순서 짜는 법
삿포로 3대 명물인 징기스칸, 미소라멘, 스프카레를 다 먹어야 한다면 순서 제안을 드릴게요.
- 첫째 날 저녁: 징기스칸 (다루마 본점 또는 삿포로 비어가든 — 기다릴 필요 적고 가성비 좋음)
- 둘째 날 점심: 스프카레 오픈런 (가라쿠 또는 스프카레 킹으로 시작하는 게 웨이팅 적음)
- 둘째 날 저녁: 미소라멘 (아지노산페이 또는 스스키노 라멘 골목)
- 시간 여유 있으면 스아게와 가라쿠 둘 다 도전. 같은 스프카레여도 맛이 꽤 달라서 비교해서 먹는 재미가 있어요.
삿포로 스프카레는 진짜 한 번 먹으면 다음 삿포로 여행 일정에 '스프카레 먹는 날'을 따로 잡게 되는 음식이에요. 처음엔 '이게 뭐지?' 싶다가 마지막 한 숟갈 뜰 땐 그릇 들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맛이거든요. 삿포로 가신다면, 라멘 전에 스프카레 먼저 드세요. 순서가 중요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