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안 가고 고베만 3박 4일, 충분했다
기타노이진칸의 서양풍 거리, 고베규 스테이크, 하쿠츠루 양조장, 호빵맨 박물관, 아리마 온천까지. 고베만으로 3박 4일이 꽉 찬 여행 기록.
역 앞이 공사 중이었고, 오히려 좋았다
고베 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내렸다. 역 앞이 대규모 공사 중이어서 캐리어를 끌고 한참을 돌았다. 호텔에 도착하니 오후 세 시 반. 관광지를 가기엔 애매하고, 그냥 누워 있기엔 아까운 시간. 혼자 여행할 때 이런 빈 시간이 좋다. 어디를 가야 한다는 압박이 없으니까.
고베는 나가사키, 요코하마와 함께 일본 3대 개항 도시다. 차이나타운이나 서양풍 건물이 관광용으로 세운 게 아니라 도시의 역사 자체에 배어 있는 곳이다. 골목을 걷다 보면 건물 사이사이에서 그 흔적이 느껴진다. 카페에 들어가 홍차를 시켰다. 우유 넣지 않고 그냥 마셔봤는데 의외로 그게 더 맛있었다. 시간이 남아서 시마무라에 갔다. 기타 스트랩이랑 피크를 몇 개 집어왔다.
기타노이진칸에서 셜록 홈즈를 만나다
둘째 날 아침. 니시무라 커피. 고베에서 오래된 킷사텡 체인인데, 들어서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공간이다. 클래식한 인테리어에 커피 향이 천장까지 올라가는 그런 곳.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아직 모른다.
기타노이진칸은 개항 시대 서양인들이 살았던 집을 보존한 구역이다. 조합권 세 장이면 충분하다. 영국관은 셜록 홈즈 컨셉인데 깨알같이 9와 3/4 승강장이랑 도비까지 숨겨놓았고, 프랑스관에는 로얄 코펜하겐 식기, 벤츠 하우스는 탐험가 컨셉에 나비 표본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관광지치고 건물마다 다른 세계가 열리는 곳은 드물다. 사람 많은 곳은 빠르게 지나치고 한적한 건물에서 천천히 머물렀다. 혼자니까 가능한 일이다.
고베규 한 점, 캔맥주의 실수
기타노이진칸 내려오면 스테이크 가게가 줄지어 있다. 정통 고베규는 비싸지만 스테이크랜드를 가면 합리적인 가격에 먹을 수 있다. 여기가 좋은 건 철판 앞 카운터석이라는 점이다. 혼밥에 아무 부담이 없다.
셰프가 눈앞에서 고베규 텐도를 굽는다. 소금과 후추만 뿌렸는데 고기 자체의 풍미가 입 안 가득 퍼졌다. 지금까지 먹은 스테이크 중 가장 맛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나마비루가 있는지 모르고 캔맥주를 시킨 것뿐이다. 오후에는 하쿠츠루 양조장에 갔다. 1743년부터 이어진 곳인데 평일 낮이라 관람객이 나 혼자였다. 조용히 전시를 둘러보고 시음하는 시간. 혼자여서 가능한 호사다.
눈 내리는 아리마 온천, 혼자만의 극락
셋째 날은 아리마 온천. 고베 시내에서 45분. 간사이 최고의 온천이라 불리는 곳이다. 독방에서 우동 세트를 시켰다. 따뜻한 국물에 팥떡 디저트까지 깔끔하게 비웠다.
밥 먹고 나왔더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 맞으며 들어간 노천온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차가운 눈송이가 얼굴에 닿는 감각. 아무 생각 없이 하늘만 올려다보는 시간이 있었다. 이게 혼자 여행의 최고 순간이다. 누구의 시선도 없고, 누구의 일정에도 맞출 필요 없이, 내 속도로 쉬는 시간.
고베만으로 충분하다, 특히 혼자라면
마지막 밤은 편의점 투어로 마무리했다. 세 군데를 돌았는데 원픽은 세븐일레븐 스무디. 달기만 한 게 아니라 고소하고 복합적인 맛이어서 한 잔 더 사올 걸 후회했다. 차이나타운의 카린 마파 레스토랑에서 먹은 마파두부도 다시 생각나고, 호빵맨 박물관 굿즈샵도 더 둘러보고 싶었다.
고베만으로 3박 4일을 채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못 간 곳이 남았다. 오사카 경유 없이 고베만 파는 여행은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혼자라면 더. 내 걸음, 내 시간, 내 속도. 고베는 그걸 자연스럽게 허락하는 도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