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후쿠오카 여행을 계획했을 때, 근교 당일치기로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가 거의 모든 블로그가 유후인을 가리켰다. 나도 그렇게 했고, 그게 어쩌면 기타큐슈를 처음 알게 된 계기였다. 유후인 줄 알고 탔던 버스에서 옆에 앉은 일본 아저씨가 "기타큐슈는 안 가? 사라쿠라 야경이 훨씬 낫는데"라고 했을 때, 그게 뭔지 몰랐다. 그게 기타큐슈와의 첫 인연이었다. 그 뒤로 세 번을 더 갔다.
기타큐슈가 뭔지 알고 가야 덜 실망한다
기타큐슈는 일본 큐슈 섬 최북단에 있는 도시다. 후쿠오카현 소속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별개의 생활권이다. 창원과 진주가 같은 경남이면서 서로 다른 것처럼. 그런데 이 도시에는 재밌는 역사가 있다. 기타큐슈란 도시는 원래 없었다. 1963년, 고쿠라·모지·야하타·도바타·와카마쓰, 5개의 서로 다른 도시가 합병해서 만들어진 행정구역이다. 그래서 기타큐슈역이 없다. 대신 고쿠라역, 모지코역, 야하타역이 따로 있다.
이걸 모르고 가면 헷갈린다. 여행지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게 아니라 따로 놀거든. 고쿠라에서 모지코까지 20분, 거기서 사라쿠라산까지 다시 30분, 시모노세키는 배 타고 건너야 한다. 다 묶어도 작은 소도시 여행 서너 개를 하루에 연결하는 느낌이다.
고쿠라: 기타큐슈의 중심
기타큐슈에서 유일하게 신칸센이 서는 역이 고쿠라역이다. 그만큼 규모도 크고, 주변 인프라도 잘 돼 있다. 기타큐슈에 숙박한다면 대부분 여기에 잡는다.
고쿠라성
역에서 걸어서 10분. 무라사키 강 서편에 솟아있는 꽤 높은 천수각이다. 재건된 건물이라 내부는 완전 현대식 박물관이지만, 성 앞에 딸린 작은 일본식 정원이 좋다. 정원 자체는 그저 그렇지만, 거기에 딸린 전각에서 올려다보는 고쿠라성 각도가 예쁘다. 인스타 찍기엔 이쪽이 훨씬 낫다.
- 입장료: 350엔 (천수각 내부 기준)
- 정원만 둘러보면 무료
- 고쿠라 시청 꼭대기 무료 전망대에서도 성이 가깝게 보임
- 전체 둘러보는 데 여유있게 잡아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
탄가시장 (旦過市場)
고쿠라성 남쪽,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재래시장이다. TV 예능 <스트리트푸드파이터>에 나온 이후 인지도가 확 올랐다. 다만 2022년 큰 화재가 났고, 지금은 옛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반찬 사서 시장 안에서 밥까지 해결했는데, 지금은 반찬만 사서 밖에서 먹는 구조다. 그래도 선어 고등어조림이나 스시는 여전히 맛있다.
고쿠라 번화가 & 야간
고쿠라역 남쪽으로 펼쳐진 상점가는 일반적인 일본 지방 중소도시 분위기다. 관광객이 적어서 굉장히 로컬적이다. 아케이드 상점가, 이자카야, 베이커리. 기타큐슈에서 1박을 한다면 밤에 여기서 술 한잔 하는 게 최고의 시간이 된다. 후쿠오카보다 훨씬 한산하고 진짜 일본 동네 느낌이 난다.
아루아루 시티 (アルアルCity)
오타쿠 성지. 고쿠라역 북쪽 출구에 만다라케, 애니메이트 등이 입점한 서브컬처 전문 쇼핑몰이다.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빠트리면 안 된다.
모지코 레트로: 기타큐슈 여행의 얼굴
모지코는 기타큐슈 최동북단의 항구 마을이다. 100~150년 전 근대에는 꽤 유망했던 무역 항구라, 지금도 그 시대 건물들이 남아있다. 현대 도시도, 전통 마을도 아닌 독특한 '근대풍' 분위기가 이 동네의 색깔이다.
모지코역과 스타벅스
모지코역 자체가 국가 등록 유형문화재다. 역 건물 안에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는데, 이 조합이 묘하게 어울린다. 커피 한 잔 들고 역 앞 광장에 서 있으면 시간 여행 온 느낌이 든다.
모지코 레트로 지구
역 앞으로 펼쳐진 네모난 항만 지역이 모지코 레트로다. 쇼핑몰과 근대 유적, 카페, 기념품 가게가 모여있다. 딱히 뭔가를 대단하게 하는 곳은 아니다. 레트로 벽돌 건물들 사이를 느긋하게 걸으면서 바닷바람 쐬고, 사진 찍고, 아이스크림 먹는 곳이다.
- 모지코 레트로 전망대: 높이 31m. 꼭대기에서 항만 뷰와 간몬해협이 한눈에 들어온다. 입장료 300엔. 필수는 아니지만 날씨 좋을 때 올라가 볼 만하다.
- 블루윙 모지 (はね橋): 낮 시간에 두 번 열리는 도개교.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 커플 명소.
- 바나나맨 인형: 모지코 레트로 곳곳에 바나나 행상인 인형이 서있다. 근대 시절 기타큐슈가 바나나 수입의 관문이었던 것을 기념하는 것.
야키카레 (焼きカレー)
모지코에 왔다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일반 카레와 달리 부글부글 끓는 상태로 나오고, 위에 치즈를 얹어 오븐에 구워낸다. 모지코 레트로 일대에만 야키카레 전문점이 10곳이 넘는다. 가격은 대개 1,300~1,800엔 사이.
- 카레혼포 모지코레트로점 (カレー本舗): 관광객에게 가장 유명한 집. 줄이 좀 있다.
- 카페 델 솔: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야키카레 맛집. 분위기도 좋다.
간몬해협박물관 (海峡ドラマシップ)
이름만 보면 그냥 박물관이겠거니 넘기기 쉬운데, 의외로 볼거리가 많다. 카페와 야외 테라스에서 모지코 전망이 멋지고, 해양생물 파노라마 디스플레이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시간이 되면 1시간 정도 배정할 것을 권한다.
모지코 ↔ 시모노세키 페리
역 서북쪽 선착장에서 5분 만에 간몬해협을 건너 시모노세키 가라토로 직행한다. 요금은 400엔. 배 자체가 작고 귀엽고, 해협을 가로지르는 느낌이 근사하다. 기타큐슈 여행에서 가장 작은 돈으로 가장 큰 재미를 주는 이동 수단이다.
사라쿠라산: 기타큐슈를 다시 찾게 만드는 곳
기타큐슈에서 단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무조건 사라쿠라산 야경을 선택한다. 일본 신3대 야경 중 하나다. 나가사키, 고베, 하코다테 같은 항구도시 야경이 지형의 아름다움이라면, 사라쿠라산은 공업지대의 불빛이 클라이맥스다.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는 기타큐슈 공업지대는 낮에도 그 광활한 스케일에 입을 벌리게 만든다. 해가 지고 공장들에 하나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하면, 그건 진짜 다른 세계다. 울산이나 광양 공단을 높은 산에서 바라봤을 때 그 장관을 상상해보면 된다. 거기에 일본 특유의 정갈한 야경이 더해진 버전.
사라쿠라산 가는 법
- 방법 1 — 주말 고쿠라역 특별셔틀버스: 가장 편하다. 고쿠라역에서 바로 산 정상 케이블카까지 직행. 단, 주말에만 운행하고 스페이스월드 쪽은 못 들른다.
- 방법 2 — JR 야하타역 일반셔틀버스: 주말에 배차 많다. 오는 길에 스페이스월드 아울렛 들를 수 있다. 평일은 저녁 일부 시간대만 운행.
- 방법 3 — 야하타역에서 도보: 걸을 만한 거리다. 아주 덥지만 않다면 걸어서 올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모노세키: 기타큐슈 세트 여행지
모지코 선착장에서 페리로 5분. 건너편 시모노세키는 엄밀히 말하면 혼슈, 야마구치현 소속이다. 규슈가 아닌 거다. 하지만 기타큐슈 여행에서 항상 세트로 묶이는 곳이다.
가라토 시장 (唐戸市場)
시모노세키 여행의 핵심. 이 지역 명물은 복어다. 복어회를 파는 식당이 많고, 주말에는 시장 앞 야외 광장에 스시 가판대가 여러 개 열린다. 바닷가 산책로에서 신선한 스시를 먹는 경험이 압도적으로 좋다. 가격이 그리 싸진 않지만, 한 두 접시 먹고 바다 보는 그 분위기 값이다.
- 주말 스시 가판: 금·토·일 오전 10시~오후 2시 운영. 이 시간에 맞추는 게 가라토 방문의 핵심.
- 평일에도 실망 불필요: 시장 안 식당에서 훌륭한 해산물 정식을 먹을 수 있다.
- 복어회 (ふぐ刺し): 1인분 2,000~4,000엔. 현지에서는 복어를 '후구'가 아닌 '후쿠'라고 부른다. 행복(福)과 발음이 같아서.
그 외 시모노세키 볼거리
- 가이쿄유메타워: 시모노세키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 모지코 전망대보다 높아서 시야가 더 넓다.
- 아카마 신궁: 단노우라 전투에서 사망한 안토쿠 천황을 모시는 곳. 붉은 건물이 인상적이다.
- 간몬대교 아래 산책로: 큐슈와 혼슈를 잇는 현수교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경험. 의외로 규모에 압도된다.
- 간몬 지하터널 (도보): 해협 밑을 걸어서 혼슈↔큐슈를 건너는 체험. 무료. 왕복 20분.
후쿠오카에서 기타큐슈 가는 법
특급 소닉 (ソニック)
하카타역 → 고쿠라역. 41분. 하카타역 출발 기준 편도 2,300엔 정도. 2장짜리 니마이킷푸(二枚きっぷ)를 사면 한 장당 15,000원 수준으로 낮아진다. 둘이서 나눠 쓸 수 있으니, 혼자 가도 왕복으로 사면 된다. 소닉 열차 색이 멋있어서 사진 찍어두는 사람이 많다.
신칸센
하카타 → 고쿠라, 단 15분. 편도 2만 원 수준으로 소닉보다 조금 비싸다. 갈 땐 신칸센, 올 때는 소닉 이렇게 바꿔 타면 두 가지 경험을 다 해볼 수 있다.
후쿠오카 와이드에리어 패스
JR에서 발매하는 외국인 전용 패스. 2일권 3,500엔. 하카타-고쿠라-모지코 전 구간 포함. 특급 소닉 자유석도 추가요금 없이 탑승 가능. 기타큐슈 외에 다른 후쿠오카 근교도 돌아볼 계획이라면 효율이 올라간다.
당일치기 추천 루트
루트 A — 여유 코스 (사라쿠라산 제외)
- 09:00 하카타 출발 (소닉 특급)
- 09:41 고쿠라 도착 → 탄가시장 스시로 아침
- 11:00 모지코역 도착 → 레트로 지구 산책
- 12:00 야키카레 점심
- 13:00 페리로 시모노세키 이동 (400엔)
- 13:10 가라토 시장 → 스시 가판 (주말이면 여기서 인생샷 확정)
- 15:00 페리 또는 JR로 고쿠라 귀환
- 15:30 고쿠라성 & 정원 산책
- 17:00 고쿠라 번화가 저녁 + 이자카야
- 21:00 하카타로 귀환
루트 B — 빡빡 코스 (사라쿠라 야경 포함)
- 09:00 하카타 출발
- 09:41 고쿠라 도착 → 바로 모지코로 이동
- 10:30 모지코 레트로 + 야키카레 점심
- 12:30 페리로 시모노세키 → 가라토 시장
- 14:30 페리 또는 JR로 야하타 이동
- 15:30 사라쿠라산 도착 (셔틀버스 이용)
- 17:00~19:30 해 지는 것 기다리며 야경 감상
- 20:00 야하타역 → 고쿠라 환승 → 하카타 귀환
교통비(왕복 소닉): 약 30,000원
모지코→시모노세키 페리 왕복: 800엔
야키카레 점심: 1,500엔
가라토 스시: 1,500~3,000엔
기타 카페·간식: 1,000~2,000엔
총합: 4만~5만 원이면 충분히 다 된다.
그래서, 기타큐슈는 가야 하나?
솔직히 말하면, 기타큐슈는 단독으로 2박3일 쓸 만큼의 콘텐츠는 없다. 고쿠라성도 구마모토성에 비하면 임팩트가 약하고, 모지코 레트로도 처음 보면 "이게 다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다른 일본 도시처럼 "와, 왔구나" 하는 압도감은 안 준다.
그럼에도 내가 세 번을 더 간 이유는 사라쿠라산 야경이다. 그 하나만으로 기타큐슈는 갈 이유가 충분하다. 거기에 야키카레, 가라토 스시, 고쿠라 골목 이자카야가 덤으로 붙는다. 후쿠오카 여행 중 날씨 좋은 날 하루를 사라쿠라산 야경에 쓰는 것,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