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나 교토만 일본인 줄 알면 오산이다. 가나자와에 한 번 오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에도 300년 동안 전쟁 한 번 없이 온전히 살아남은 도시. 겐로쿠엔, 히가시 차야가이, 오미초 시장 — 이 세 개만 제대로 봐도 하루가 꽉 찬다. 2박 3일이면 다른 얼굴까지 볼 수 있다.
가나자와가 뭔데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도쿄에서 홋카이도 신칸센 연장으로 생긴 호쿠리쿠 신칸센을 타면 2시간 30분이면 닿는다. 오사카에서는 특급 선더버드로 약 2시간.
에도 시대 가가 번(加賀藩)을 지배한 마에다 가문이 이 도시를 키웠다. 가고시마의 시마즈, 도쿄의 도쿠가와 다음으로 큰 영지였는데 정작 전국시대에도 용케 전쟁을 피해 살아남았다. 덕분에 도시 전체가 멀쩡히 남아있다. 교토는 워낙 유명해서 사람에 치이지만, 가나자와는 아직 숨 쉴 공간이 있다. 그게 이 도시를 계속 찾게 만드는 이유다.
참고로 일본 금박의 99%가 가나자와에서 생산된다. 금박 체험, 금박 아이스크림, 금박 커피까지 — 금으로 도배된 도시라고 보면 된다.
겐로쿠엔(兼六園) — 일본 3대 정원이 이 도시에 있다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 나머지 둘은 미토의 가이라쿠엔, 오카야마의 고라쿠엔이다. '겐로쿠'라는 이름은 "6가지 덕목(넓음·고요함·인공미·유서깊음·풍부한 물·넓은 조망)을 갖췄다"는 뜻이다. 고리타분하게 들리지만 실제로 들어가면 납득이 된다.
- 코토지토로 석등(琴柱灯籠) — 다리가 두 개인 특이한 모양의 석등. 가나자와 관광 사진에서 빠지지 않는 상징.
- 가스미가이케 연못 — 가운데 호라이 섬이 있는 메인 연못. 장수와 번영을 상징한다고 한다. 1632년에 만든 수로로 물을 공급하는데, 수압 차이로 움직이는 일본 최초의 분수도 여기 있다. 높이 3.5m까지 물이 솟는다.
- 가라사키 소나무 —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지역 특성상 큰 나무들에는 설해(雪害)를 막는 전통 방식인 '유키즈리(雪吊り)'를 설치한다. 거미줄처럼 퍼진 새끼줄이 가나자와 겨울 풍경의 상징.
봄에는 매화·벚꽃(4월 중순), 가을에는 단풍(11월 중순~12월 초), 겨울에는 설경. 어느 계절에 와도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정원 한켠 찻집에서는 말차와 화과자를 팔기도 한다.
가나자와 성 공원(金沢城公園) — 겐로쿠엔 바로 옆
겐로쿠엔과 붙어있어서 같이 둘러보면 된다. 마에다 가문의 성. 규모 자체는 오사카 성보다 작지만 입장 무료라는 게 장점이다. 성곽 내부는 넓고 개방적이다. 흰 벽이 인상적인 이시카와 문(石川門)이 주요 포토존.
히가시 차야가이(東茶屋街) — 에도 게이샤 거리
1820년에 지정된 가나자와 최대 게이샤 구역. 교토 기온이나 오사카 같은 북적임은 없다. 그 덕분에 오히려 거리 분위기가 살아있다. 에도 시대 당시에는 2층 건물 건축이 차야(茶屋, 게이샤 찻집)에만 허용됐다. 1층 외벽의 세로 격자 '기무스코(木虫籠)'가 특징.
- 시마 찻집(志摩) — 당시 모습 그대로 박물관으로 공개. 게이샤가 사용하던 악기, 방, 부엌 등을 볼 수 있다.
- 가이카로 찻집(懐華樓) — 현재도 운영 중인 찻집. 입장 시 말차 서비스 포함. 내부가 화려하다.
- 하쿠자(箔座) — 금박 전문점. 금박 도자기부터 금박 아이스크림까지. 안쪽 금박 다실은 사방이 온통 금이다.
메인 거리에서 5분 거리에 아사노강이 있다. 강변 카페들도 분위기 있다. 맑은 날 오후에 히가시 차야가이를 걸으면 조명이 달라진다 — 가이드북 사진 그대로다.
오미초 시장(近江町市場) — 300년 역사의 부엌
에도 시대부터 가나자와의 부엌 역할을 해온 시장. 지붕 달린 아케이드 안에 약 200개의 상점이 빼곡하다. 해산물이 주력이다. 동해(日本海)에 접한 이시카와현답게 제철 게, 굴, 새우, 생선이 풍성하다.
- 오미초 고로케 — 시장 명물. 해산물이 들어간 고로케로 줄 서서 먹는 간식.
- 카이센동 식당들 — 점심 시간대에는 줄이 길게 선다. 오전 11시~12시 사이에 가거나 개장 직후인 9~10시를 노릴 것.
- 페트라 베이컨 커피(Petra Bacon Coffee) — 시장 안 숨어있는 카페. 차이나 라테 같은 이색 메뉴도 있다.
오야마 신사(尾山神社) — 유럽식 문이 있는 신사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를 모신 신사. 1875년에 만들어진 신몬(神門)이 독특하다. 네덜란드식 스테인드글라스를 끼운 서양식 창문과 일본·중국 건축 양식이 뒤섞인 3층짜리 문이 가나자와의 다채로운 문화 흡수력을 보여준다. 겐로쿠엔에서 걸어서 5분 거리라 동선 짜기 좋다.
나가마치 무가 주택 지구(長町武家屋敷跡) — 사무라이 골목
히가시 차야가이가 게이샤의 세계라면, 나가마치는 사무라이의 세계다. 토담길이 이어지는 골목에 무사 저택들이 남아있다. 노무라 가문 저택(野村家)은 내부 관람 가능(500엔). 정원과 다실이 잘 정비되어 있다. 비가 올 때도 분위기 있는 동네다.
21세기 미술관(21世紀美術館)
가나자와의 현대 예술 랜드마크. 원형의 독특한 건물로 2004년 개관 이후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유료 구역과 무료 구역이 나뉜다. 무료 구역의 인기 작품은 '스위밍 풀' — 수영장 바닥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설치 미술이다. 겐로쿠엔·가나자와 성 바로 옆이라 동선에 넣기 쉽다.
가나자와 오뎅(おでん)
가나자와에서 꼭 먹어야 할 향토 음식 중 하나. 해산물 육수가 기반이라 일반 오뎅과 맛이 다르다. 두부, 문어, 어묵, 무 등이 들어간다. 현지인들이 겨울에 즐겨 먹는 소울푸드.
- 아카다마(赤玉) — 히가시 차야가이 근처 오뎅 전문점. 구글 예약 가능. 두 명 세트로 주문하면 넉넉하게 먹을 수 있다.
체험 프로그램
- 가가 기모노 센터(加賀友禅) — 가나자와 전통 섬유 공예인 가가 유젠 염색 체험. 손수건에 가가 문양을 스텐실로 찍는 워크숍이 인기다. 사전 예약 권장.
- 금박 체험 — 히가시 차야가이 일대에 금박 체험 공방이 여럿 있다. 나무 상자나 컵에 직접 금박을 붙여볼 수 있다.
- 와가시(和菓子) 체험 — 가나자와는 오사카, 교토와 함께 일본 3대 과자 문화 도시다. 직접 화과자 만들기 체험도 가능.
교통 정리
가나자와 역에서 주요 관광지까지는 조카마치 가나자와 주유 버스(城下まち金沢周遊バス)로 이동한다. 1일 프리 승차권이 성인 800엔. 편도 220엔이니 네 번 이상 탄다면 본전.
- 가나자와 역 → 히가시 차야가이: 약 15분 (하시바초 정류장 하차)
- 가나자와 역 → 겐로쿠엔: 약 20분
- 가나자와 역 → 오미초 시장: 도보 15~20분 또는 버스
공유 자전거 '마치노리(まちのり)'도 있다. 도심은 평탄해서 자전거로 다니기 좋다.
추천 2박 3일 동선
- 1일차: 오미초 시장 (오전) → 21세기 미술관 → 히가시 차야가이 산책 → 아카다마 오뎅 (저녁)
- 2일차: 겐로쿠엔 (이른 아침 무료 입장) → 가나자와 성 공원 → 오야마 신사 → 나가마치 무가 주택 → 금박 체험 또는 가가 유젠 체험
- 3일차: 늦은 아침 야마자키 식당 조식 → 니시 차야가이 또는 가즈에마치 차야가이 산책 → 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