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를 처음 갔을 때, 솔직히 좀 겁이 났어요. 원자폭탄이 떨어진 도시라는 무게감 때문인지, 괜히 발걸음이 무거웠거든요. 근데 막상 도착하니까 전혀 달랐어요. 전차가 덜컹덜컹 달리는 거리에는 카페가 있고, 저녁마다 오코노미야키 냄새가 골목을 채우고, 사람들은 다 너무 평범하게 살고 있더라고요. 그 대비가 오히려 더 마음에 남았어요. 일본에서 가장 '깊은' 도시를 꼽으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히로시마라고 말할 것 같아요.
🕊️ 평화기념공원 — 12만㎡의 묵직한 침묵
히로시마 중심부에 위치한 평화기념공원(平和記念公園)은 면적 약 12만 ㎡로, 도심 한가운데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넓어요.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 이 자리는 히로시마에서 가장 번화한 정치·상업 지구였어요. 폭격 후 4년이 지난 1949년, 일본 정부는 이 땅을 재개발하지 않고 평화 기념 지구로 조성하기로 결정했죠.
- 원폭 돔(原爆ドーム): 폭심지에서 불과 160m 거리에 있었음에도 기둥 골격이 남은 건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요. 24시간 무료로 외부 관람 가능해요.
- 원폭사망자 위령비(原爆死没者慰霊碑): 아치형 비석 아래에는 원자폭탄으로 사망한 22만 명 이상의 이름이 담긴 명부가 보관되어 있어요. 비석의 구멍을 통해 원폭 돔이 정면으로 보이는 구도가 인상적이에요.
- 원폭 어린이상(原爆の子の像): 종이학을 1,000마리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믿고 백혈병과 싸우다 세상을 떠난 소녀 사다코를 기리는 동상. 전 세계 아이들이 보낸 종이학이 매년 쌓여요.
매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 폭탄이 투하된 정확한 시각 — 에 추모 행사가 열려요. 그 시간에 공원에 있으면 온 도시가 함께 침묵 속에 멈추는 걸 느낄 수 있어요.
💡 꿀팁: 공원 입장은 무료예요. 트램 2번 또는 6번을 타고 원폭 돔 앞(爆ドーム前)에서 내리면 돼요. 히로시마역에서 약 15분, 편도 240엔이에요.
🏛️ 평화기념자료관 — 역사를 마주하는 시간
공원 내 평화기념자료관(平和記念資料館)은 히로시마 역사와 원폭 투하의 과정, 그리고 이후의 피해를 상세히 기록한 박물관이에요. 특히 개인의 유품과 증언이 중심이 되어 있어서, 단순히 '사건'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로 와닿아요. 강렬하고 슬프지만,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이에요.
- 운영시간: 7:30~19:00 (8월은 20:00까지, 12월~2월은 18:00까지)
- 입장료: 성인 200엔 (저렴한 편이에요)
- 예약: 개관 첫 1시간(7:30~8:30)과 마감 90분 전에는 사전 예약 필수. 그 외 시간은 예약 없이 입장 가능
- 소요시간: 천천히 보면 2~3시간. 입장 전 마음의 준비를 조금 하는 게 좋아요.
⚠️ 주의: 박물관 내부는 사진 촬영이 일부 제한된 구역이 있고, 아이와 함께 간다면 사전에 내용을 설명해주는 게 좋아요. 어린 아이들에게는 다소 무거울 수 있어요.
🦌 미야지마 섬 — 바다 위에 떠 있는 도리이
히로시마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단연 미야지마 섬(宮島, 이츠쿠시마)이에요. 바다 위에 세워진 이츠쿠시마 신사(厳島神社)와 그 앞의 오토리이(大鳥居)는 일본의 상징적인 풍경 중 하나로 꼽혀요.
- 이츠쿠시마 신사: 1168년 헤이안 시대에 창건된 신사. 만조 때는 신사 건물 전체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요. 만조·간조 시간에 따라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에, 방문 전 조석 시간표를 확인하는 걸 추천해요.
- 입장료: 300엔 (보물관 합산권은 500엔)
- 운영시간: 6:30~18:00 (3월~10월 14일 기준)
- 야경: 해가 진 후에도 23:00까지 조명이 켜져요. 료칸에서 유카타 입고 저녁 산책하면 진짜 분위기 있어요.
- 야간 유람선: 신사 앞 바다를 30분간 유람하는 보트. 1,600엔, 예약 필요.
가는 방법: 히로시마역에서 JR 산요 본선으로 미야지마구치(宮島口)역까지 약 26분. 거기서 페리로 약 10분. JR 패스 소지자는 JR 페리 무료 탑승 가능해요. 페리 터미널에서 신사까지는 걸어서 10분이에요.
💡 꿀팁: 미야지마의 사슴들은 귀엽지만 가방이나 지도를 빼앗아가기도 해요 ㅋㅋ. 식음료는 가방 속 깊이 넣어두세요.
🥞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 — 오사카랑은 다릅니다
오코노미야키(お好み焼き)는 히로시마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을 만큼 이 도시의 소울 푸드예요. 다만 오사카식 오코노미야키와는 만드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요. 오사카가 재료를 반죽에 섞어서 굽는다면, 히로시마는 재료를 층층이 쌓아서 굽는 방식이에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 면(야키소바 또는 우동)이 들어가요.
- 기본 구성: 얇게 펼친 반죽 → 양배추 → 콩나물 → 돼지고기 → 가다랑어포 → 야키소바 → 계란 → 소스 순서로 층층이 쌓아 뒤집어서 완성
- 가격대: 기본 1,200~1,500엔, 카키(굴) 토핑 추가 시 2,000엔 내외
- 추천 식당가: 히로시마역 근처 오코노미무라(お好み村) — 건물 2~4층 전체가 오코노미야키 식당으로 가득 차있어요. 어디 들어가도 기본은 해요.
- 미치코산, 챔피언 등 노포들도 유명한데 줄이 길 수 있어요.
📝 주문 팁: 메뉴판에서 '스페셜(スペシャル)'을 고르면 소바+계란+돼지고기+굴 풀 구성으로 나와요. 처음이라면 스페셜이 정답이에요.
🦪 히로시마 굴 — 일본 최대 굴 산지
히로시마는 일본 전체 굴(カキ, 카키)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하는 최대 산지예요. 10월부터 4월이 제철이라 이 시즌에 방문하면 가장 맛있는 굴을 먹을 수 있어요.
- 구이(カキの炭火焼き): 숯불에 껍데기째 구워 먹는 방식. 미야지마 섬 입구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어요. 1개 200~350엔 정도.
- 카키프라이(カキフライ): 튀긴 굴. 히로시마 시내 돈카츠 식당이나 오코노미야키 식당에서도 많이 먹어요.
- 생굴(生カキ): 히로시마 시내 굴 전문점에서 먹을 수 있어요. 탄탄한 식감과 진한 바다향이 달라요.
- 미야지마 상점가: 섬에 들어서자마자 굴 구워 파는 가게들이 쭉 늘어서 있어요. 걸어가면서 먹기 좋아요.
💡 꿀팁: 굴 알레르기 있는 분들은 미야지마 상점가 음식에 굴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 사전에 확인하는 게 좋아요.
🏯 히로시마 성 — 시내에서 걸어갈 수 있는 성
평화기념공원에서 걸어서 약 20분 거리에 히로시마성(広島城)이 있어요. 원래 1589년에 축성된 성이지만 원폭으로 소실된 후 1958년에 복원되었어요. 천수각에 올라가면 히로시마 시내 전경이 한눈에 보여요.
- 입장료: 370엔
-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30분 (입장은 5시까지)
- 소요시간: 30분~1시간 내외
🍁 모미지 만주 — 히로시마 기념품의 정석
히로시마 하면 모미지 만주(もみじ饅頭). 단풍잎 모양의 작은 만주로, 팥·크림·초콜릿·치즈 등 다양한 필링이 있어요. 미야지마 상점가에서 갓 구운 것을 맛볼 수 있고, 히로시마 공항에서도 살 수 있어요. 가격은 1개 150엔 내외.
💡 미야지마 안쪽에서 직접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가게도 있으니 구경해보세요. 갓 구운 것은 식은 것과 차원이 다르게 맛있어요.
🚇 히로시마 교통 정리
공항 → 시내
- 히로시마 공항에서 히로시마역까지 공항버스 이용. 편도 1,500엔, 약 50분 소요.
- 히로시마역 버스터미널 2번 승강장에서 탑승.
- 반드시 티켓을 미리 창구에서 구매 후 탑승 (버스 안 현금 불가인 경우 있음).
시내 이동
- 노면전차(路面電車): 히로시마 시내 이동의 핵심. 편도 240엔 균일요금. ICOCA 카드 사용 가능해요.
- ICOCA 카드: 히로시마역에서 발급 가능. 전차, JR 열차 모두 사용 가능해요.
- 히로시마역 → 미야지마구치역: JR 산요 본선 약 26분, 410엔.
- 미야지마구치역 → 미야지마 섬: JR 페리 약 10분. JR 패스 소지자 무료.
📅 2박 3일 추천 코스
- 1일차: 히로시마 도착 → 평화기념공원·원폭돔 → 평화기념자료관 → 오코노미무라에서 저녁
- 2일차: 미야지마 섬 당일 코스 (이츠쿠시마 신사·오토리이·야간 조명·굴 구이) → 히로시마 시내 야경
- 3일차: 히로시마 성 → 시내 쇼핑 → 공항 버스
⚠️ 참고: 2일차에 미야지마를 방문할 때는 만조·간조 시간표를 미리 확인하세요. 만조 때 오면 신사가 물 위에 뜬 것처럼 보이고, 간조 때 오면 오토리이 바로 앞까지 걸어갈 수 있어요. 둘 다 다른 매력이 있으니 오전·오후 방문을 계획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히로시마는 슬픔을 딛고 일어선 도시인 동시에, 굴이 맛있고 오코노미야키가 맛있고 바다가 아름다운 도시이기도 해요. 무거운 마음으로 갔다가,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그런 여행이 될 것 같아요. 저는 그랬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