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원자폭탄이 먼저 떠오른다. 1945년 8월 6일의 그 도시. 그런데 막상 가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평화롭고, 깔끔하고, 먹을 게 많고, 볼 게 많다. 아침에 평화공원에서 숙연해졌다가 저녁엔 오코노미야키 앞에서 행복해지는 도시다. 도쿄나 오사카에 비해 관광객이 적어 여유롭고, 미야지마라는 섬을 옆에 두고 있어 하루에 두 곳을 동시에 챙길 수 있다. 히로시마는 한 번 가면 또 오고 싶어지는 도시다. 이미 두 번 다녀왔다.
히로시마, 어디서 얼마나 걸리나
한국에서 히로시마로 가는 직항은 아직 없다. 보통 후쿠오카나 오사카(간사이)를 통해 이동한다.
- 후쿠오카 → 히로시마: 산요 신칸센 히카리·코다마 탑승, 약 1시간~1시간 20분. 신칸센 자유석 기준 편도 약 5,800엔. 가장 빠른 루트.
- 오사카(신오사카) → 히로시마: 노조미 약 1시간 30분, 히카리 약 1시간 45분. 편도 자유석 약 10,220엔.
- 도쿄 → 히로시마: 노조미 약 3시간 50분~4시간. 편도 자유석 약 19,330엔. JR 패스를 갖고 있다면 가장 가성비 좋은 활용처 중 하나.
히로시마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리무진 버스 약 55분, 편도 1,450엔이다. 공항은 시내에서 멀어서 신칸센 이동이 훨씬 편하다.
JR 패스 7일권(약 5만 엔)은 도쿄→히로시마→후쿠오카→미야자키 같은 큰 동선을 짤 때 본전이 나온다. 히로시마만 갈 거라면 단독 구매가 낫다. 단, 히로시마 관광 패스(Visit Hiroshima Tourist Pass)는 꼭 챙겨야 한다. 노면전차+버스+미야지마 페리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패스로, 3일권 기준 약 2,000엔이다.
미야지마: 바다에 뜬 도리이와 사슴의 섬
히로시마에 왔다면 미야지마는 필수다. 이쓰쿠시마 신사(厳島神社)는 일본 3경 중 하나로, 바다 위에 떠 있는 오토리이(大鳥居)가 상징이다. 밀물일 때는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썰물일 때는 문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다. 둘 다 좋지만 분위기는 밀물 때가 훨씬 극적이다.
미야지마 가는 법
- 히로시마역 → 미야지마구치역: JR 산요본선 약 30분, 편도 420엔 (Visit Hiroshima Tourist Pass 사용 가능)
- 미야지마구치역 → 페리 선착장: 도보 약 5분
- 페리: 약 10분 간격 운항, 편도 200엔(왕복 400엔). 단, 미야지마 입도세 100엔 별도.
- JR 미야지마 페리는 오전 9:10~오후 4:10에 '오토리이 코스'를 운항해서 배 위에서 가까이 볼 수 있다.
섬에서 꼭 먹어야 할 것
굴(카키): 미야지마 오모테산도 상점가 노점에서 버터간장, 치즈, 미소버터 등으로 구워준다. 촉촉하고 달콤하다. 한 개 300~500엔 수준. 11월~4월 제철이지만 양식이라 연중 먹을 수 있다.
모미지만주(紅葉まんじゅう): 히로시마 단풍잎 모양 화과자. 크림, 단팥, 초코 등 다양한 맛이 있다. 자동 컨베이어 앞에서 즉석으로 구워주는 것도 있는데 갓 구운 게 훨씬 맛있다. 한 개 150~180엔.
오코노미야키 타이야키: 히로시마 특산으로 타이야키 안에 오코노미야키 내용물(야키소바 면, 양배추, 마요네즈)이 들어있다. 독특한 조합인데 의외로 맛있다. 한 개 400엔 전후.
미야지마 명소
- 이쓰쿠시마 신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복도 형태의 회랑 신사가 바닷물 위에 세워져 있다. 입장료 300엔.
- 다이쇼인(大聖院): 미야지마 남쪽의 1200년 역사 사원. 계단마다 지장보살이 줄지어 있고 단풍 시즌엔 장관을 이룬다.
- 미센산(弥山): 섬의 주봉. 로프웨이 왕복 약 2,000엔. 정상에서 세토내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 사슴: 나라만큼은 아니지만 섬 곳곳에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먹이는 주면 안 된다. 종이 같은 것을 들고 있으면 빼앗아 먹으려 하니 조심.
오토리이 주변을 걸으려면 썰물 시간대를 확인해야 한다. Visit Hiroshima 공식 웹사이트나 앱에서 당일 조수 시간표를 미리 체크하자.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방문하면 두 가지 분위기를 다 볼 수 있다.
히로시마 평화 기념 공원
관광지가 아니라 추모의 장소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 상공에서 원자폭탄이 터졌다. 그 중심부에 지금 공원이 있다.
원폭 돔(原爆ドーム)
폭탄이 터진 거의 정중앙에 있었던 히로시마현 산업 장려관 건물이다. 폭심 직상에서 폭발했기 때문에 오히려 수직으로 충격이 가해져 외벽이 살아남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입장료 없이 외부에서 볼 수 있다. 가까이서 보면 무너져 내린 철골 프레임이 여전히 원형대로 남아 있다.
히로시마 평화 기념 자료관(平和記念資料館)
원폭 투하 전후의 히로시마 전경 파노라마로 시작해서, 원폭 피해 현장의 유물·사진·증언으로 이어진다. 폭격 직후 시내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녹아내린 물건들, 피폭 당시 착용하던 의류가 고스란히 전시돼 있다. 두 시간은 잡아야 한다. 출구로 나올 땐 국제사회의 핵 군축 노력과 평화를 향한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입장료 200엔. 오전 8시~오후 6시(8월은 오후 7시까지, 시기에 따라 변동).
어린이 평화 기념비(原爆の子の像)
피폭 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사키 사다코를 기리는 비다. 병에 걸린 후 쾌유를 바라며 종이학 천 마리를 접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비 주변에는 전 세계에서 보내온 수천만 마리의 종이학이 쌓여 있다.
평화공원은 도보로 1~2시간이면 돌 수 있다. 원폭 돔 → 어린이 평화 기념비 → 위령비 → 자료관 순서로 이동하면 자연스럽다. 위령비 앞에 서면 평화의 불꽃과 원폭 돔이 일직선으로 겹쳐 보이는 유명한 포토 스팟이 나온다. 이른 아침이 사람이 적고 조용하다.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 오사카 것과 다르다
히로시마에 왔는데 오코노미야키를 안 먹고 가면 절반은 헛된 여행이다. 오사카식은 재료를 반죽에 전부 섞어서 굽는다. 히로시마식은 다르다. 얇은 반죽 위에 양배추, 숙주나물, 돼지고기를 층층이 쌓고, 거기에 야키소바 면을 깔고, 마지막에 달걀 프라이를 얹어 뒤집는다. 풍성하고 든든하다. 오타후쿠 소스 특유의 달콤한 향이 그릴 위에서 퍼지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오코노미무라(お好み村)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의 성지다. 신텐치 상점가 빌딩 2~4층에 24개 전문점이 입주해 있다. 가게마다 메뉴와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다. 처음 왔다면 어디 들어가야 할지 막막한데, 구체적으로 추천하자면:
- 핫쇼(八昌): 얇은 반죽과 바삭한 면발이 특기. 유기농 양배추를 쓴다. 소바 오코노미야키 약 1,200엔. 줄이 길 수 있으니 저녁 5시 30분 오픈 전에 가자.
- 야마짱(やまちゃん): 1965년부터 이어온 노포. 진한 소스 맛. 고기·새우·오징어 풀세트 스페셜이 인기.
- 로쿠(六): 신선한 히로시마 굴이 들어간 카키 오코노미야키가 별미. 한 개 추가하면 800~900엔에서 1,300엔대로 오른다.
밋짱 총본점(みっちゃん総本店)
오코노미무라 밖에서 가장 유명한 집이다. 1950년 창업. 바삭한 소바면 식감이 핵심이다. 기본 니쿠타마 800엔대부터. 피크 타임엔 40분 이상 대기 각오. 히로시마역 에키나카(あさ食堂)에도 분점이 있어서 이동 전 들르기 좋다.
오코노미야키는 테이블에 내장된 철판(테판) 위에 서빙된다. 먹는 동안 계속 따뜻하다는 게 장점인데, 실수로 건드리면 화상 주의. 주걱(헤라)로 잘라서 먹으면 된다. 잘못 자르면 안에서 야키소바가 쏟아지기 때문에 눌러가면서 조심스럽게.
히로시마 시내 이동: 노면전차가 주인공
히로시마는 노면전차(히로덴, 広島電鉄)가 시내를 촘촘히 연결한다. 관광지 대부분이 노면전차로 닿는다. 1회 요금 240엔, 1일권 700엔. 앞서 언급한 Visit Hiroshima Tourist Pass(3일권 약 2,000엔)를 사면 노면전차+버스+미야지마 페리를 전부 포함한다.
- 히로시마역 → 평화기념공원: 원폭 돔 앞 정류장(原爆ドーム前) 약 15분
- 히로시마역 → 미야지마구치역: JR 이용(약 30분), 노면전차로는 약 1시간 25분
- 노면전차는 앞문 승차, 뒷문 하차가 기본이다. IC 카드(Suica/ICOCA) 사용 가능.
찬이 추천하는 1박 2일 히로시마 코스
여러 번 다녀온 입장에서 정리하면 이렇다.
1일차
- 오전: 히로시마역 도착 → 짐 맡기고 → 히로덴 타고 미야지마구치역 → 페리로 미야지마 입도 (밀물 시간 맞추기)
- 점심: 오모테산도 상점가에서 굴 구이 + 모미지만주
- 오후: 이쓰쿠시마 신사 → 다이쇼인 → (체력 있으면) 미센 로프웨이 → 썰물 시간에 오토리이 걸어가기
- 저녁: 히로시마 시내로 복귀 → 오코노미무라에서 저녁식사 (오픈 30분 전 도착 권장)
2일차
- 오전 일찍: 히로시마 평화 기념 공원 → 원폭 돔 → 어린이 평화 기념비 → 위령비
- 오전 10시 이후: 히로시마 평화 기념 자료관 (2시간 예상)
- 점심: 밋짱 총본점 (피크 피하려면 11시 30분 전 입장)
- 오후: 히로시마성 (천수각 360엔) → 슈케이엔 정원 (260엔) → 귀국 또는 이동
• 미야지마 이동비: 페리 왕복 400엔 + 입도세 100엔
• 이쓰쿠시마 신사 입장: 300엔
• 굴 구이: 500엔~
• 모미지만주: 150~200엔
• 오코노미야키 1끼: 800~1,300엔
• 평화 기념 자료관: 200엔
• 히로시마성: 360엔
• 숙박: 히로시마역 주변 비즈니스 호텔 기준 7,000~12,000엔
→ 교통비 제외, 식비·관람료만 약 5,000~7,000엔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히로시마 추가 꿀팁
- 카키 제철: 11월~4월이 최대 제철. 여름에도 양식 굴은 먹을 수 있지만 식감이 조금 다르다.
- 히로시마 레몬: 히로시마현 인근 세토내해 섬들이 일본 레몬 생산의 절반을 차지한다. 레몬 소주, 레몬 소스 카라아게, 레몬 소프트아이스크림 등 레몬 제품이 곳곳에 있다. 특히 미야지마 레몬 쿠리무소다(400엔)가 여름에 좋다.
- 히로시마 카키 라멘: 굴 육수 베이스의 라멘. 히로시마 특유의 메뉴로 오코노미야키보다 덜 알려졌지만 분명히 먹어볼 가치가 있다.
- 미야지마 입도세: 2023년부터 1인당 100엔의 방문세가 부과된다. 페리 탑승 시 별도로 낸다. JR 패스가 있어도 이건 내야 한다.
- 평화 기념 자료관 줄 서기: 성수기(7~8월, 봄가을 연휴)엔 입장 대기가 길다. 온라인 사전 예약이 가능하다. 공식 사이트에서 미리 예매하는 게 낫다.
- 전망대 없이도 야경은 있다: 히로시마성 천수각에서 보는 시내 야경이 의외로 좋다. 입장 마감이 저녁 6시여서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황혼 무렵 올라가면 노을을 볼 수 있다.
히로시마는 보통 규슈(후쿠오카)나 간사이(오사카·교토·나라) 여행 동선에 하루 이틀 더 붙이는 방식으로 많이 다닌다. 그냥 지나치기 아깝다. 평화공원에서 한 번쯤은 진지하게 앉아 있어 보고, 오코노미야키 앞에서 웃고, 미야지마 오토리이 앞에서 한 번쯤 멈춰 서면 된다. 그걸로 충분하다.
